죽음은 항상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Thinking




4월은 잔인한 달이라더니 참으로 그렇다. 4월이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들려온 비보는 만으로 채 서른이 되지 않아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대학 선배의 부고였다. 꽃집아가씨처럼 항상 밝고 명랑했던 선배가 그리 오랫동안 무서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 이의 죽음은 오히려 너무도 생경해서, TV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죽음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냥 이렇게 식을 올리면, 젊은 청춘의 지난 발자취가 모두 없었던 일이 되고마는지 선배의 영정을 보면서도 내내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더 큰 충격은 고작 일주일 뒤에 몰려왔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잘못되었다는 것 자체는 확실했다. 덕분에 꽃같은 어린 생명과 죄없는 목숨 300여명이 차가운 바다 속에 삼켜져 싸늘히 식어갔다. 언제나 그랬듯,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은 유유히 빠져나가 변명을 일삼거나, 다른 부처의 탓으로 돌리거나, 사퇴로 일단락하거나, 스스로 단죄자의 자리로 내려와 회피하고 외면했다. 대형사고라는 것이 어느 한 부분만의 잘못으로 일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희생양을 찾아 분노를 배설하고, 애도와 추모의 의미로 노란 리본을 달기 이전에 이 허무하고 어처구니 없는 죽음은 종결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알아야 한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외할아버지는 위암 3기라는 판정을 받으셨다. 2년전만 해도 위염에 불과했던 작은 병이었는데 팔순이라는 고령 때문이신지 급속히 암으로 발전한듯 싶다. 평소 잔병치레 한번 없이 정정하시던 분이 지금은 좁은 병실에 누워 수액과 진통제를 맞고 계신다. 배 한가운데에 팔뚝길이만한 수술자국을 남기신 채로. 첫 수술이 잘 되서 금방 퇴원하실 수 있나 싶었는데 수술자리에 염증이 생기는 바람에 재수술을 하시고 여태 물 한잔 제대로 못 드시는 상태다. 가족들이 번갈아가며 간병을 하고 있고, 나 또한 틈틈히 가서 자리를 지키고 병원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다. 생과 사가 종이 한장 차이로 얼굴을 마주보는 곳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곤 한다. 병세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보니 그렇다.

젊은 나이에 병에 의한 요절이든, 사고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이든, 노령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죽음이든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은 당연한 일인데 피하려 하고, 직면해야 하는데 만나기 두려워하고, 어쩔 수 없는데 모면하고자 한다. 누구나 죽을 것을 알면서,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사람은 죽는다. 언제일지 모른다고 해도 거의 다 백년 이내에 죽는다. 그리고 태어날 때 아무것도 없었듯이,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흔히 앞에 예정된 일에 대해 준비한다. 출산을 앞두었거나, 결혼이나 승진이나, 하다못해 점심 약속이 있으면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한다. 그러나 아무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언제일지 몰라서일까. 준비할 것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그딴 것을 준비하면 재수 없어 일찍 죽을까 걱정되어서일까?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믿었고, 그 세계는 자신이 반드시 행해야 할 일을 깨닫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한 자들에게 부여되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은 지상에 있어서 인간의 존재가 사라지는 통과의례로서, 그 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느냐를 마지막으로 묻는 관문이다. 죽음을 통해서 오늘 나의 삶이 더욱 가치가 있으며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다. 만일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어떤 일을 할까. 인생의 군더더기는 모두 사라지고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통해 삶을 묵상하면 오히려 그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거룩한 용기가 생긴다. 

종교에 밀착된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의 삶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훈련 중 하나는 죽음에 대한 연습일 것이다. 거창한 연습이나 상상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티브 잡스가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이듬해에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한 연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죽음은 우리가 경험해야 하는 목적지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의 최고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묵상)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며, 죽음을 통해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에 자리를 내준다." 

뺨과 턱의 경계를 정확히 선을 그어 나누지 못하듯이, 숨 쉬고있는 내 주위엔 항상 죽음도 맴돌고 있다. 나만 모를 뿐이다. 

      

덧글

  • shuu 2014/04/28 22:27 # 답글

    안으로 밖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많으셨네요... 5월엔 좀 따뜻하고 밝은 소식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것들이 4월의 슬픔을 지울 순 없겠지만요...

    그리고... 본문의 '죽음은 지상에 있어서 인간의 존재가 사라지는 통과의례로서, 그 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느냐를 마지막으로 묻는 관문이다.' 라는 말이 깊게 박히네요.
  • 9회역전만루홈런 2014/04/29 00:26 #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들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사회적으로 안타까웠던 일들은 더 오래 기억되고 개선되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슬프고 답답한 감정이 대부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요새는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어딘가 발산할 곳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더 가치있게 살아야되는데, 또 말만 앞서고 있는 것 같아서 심히 걱정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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