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는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About City













랜드마크가 반드시 거대하거나 웅장할 필요는 없다. 랜드마크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봐도 그렇다. 랜드마크는 어떤 지역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것으로 그 지역을 다른 지역과 구별되게 만드는 객체(object)라 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건물이나 상점 또는 산 등이 물리적인 객체가 된다. 따라서 한 지역을 다른 지역과 구별하거나 또는 한 지역에서 그 지역에 위치한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것은 크기와 상관없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도시의 모든 건물이 2층짜리 단독주택이라면, 30층짜리 아파트가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도시의 모든 건물이 100층짜리 오피스 건물이라면, 2층짜리 단독주택이 랜드마크가 될 수도 있다. 랜드마크는 주변과 비교되는 독특한 성질을 지니며, 시간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모든 건물이 과거에는 2층 단독주택이었는데, 시간이 100년쯤 흘러 모두 30층 아파트로 변화했다면, 100년전에 세워진 30층 아파트는 더 이상 랜드마크가 아니다. 

다음 달, 동대문디자인플라자라는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축물이 오픈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전 오세훈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의 역점 사업 중 하나로,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한 자리에 디자인 관련 전시장과 컨벤션센터를 갖춘 디자인 테마를 건설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된 개발 사업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수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초기 공사비가 3천 700억 원에서 40% 가량 증액돼 총 공사비가 5천억 원으로 늘어난 것은 둘째치고라도, 그 정도 금액의 대형 사업을 벌이면서 내부에 어떤 기능이 들어갈지를 결정하지도 않은 채 건물부터 지은 것은 대단한 잘못이라는 지적이 많다. 참고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연면적은 63빌딩 전체 면적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건물을 건설하면서, 어떤 소프트웨어 기능이 들어가야 동대문의 패션타운과 시너지를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세계적 건축가가 지은 건물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맹신이 가져온 만용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세계적 유명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 그런데 그가 설계한 건물 자체만으로 정말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질문의 답은 광저우에 세워진 오페라하우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건물 또한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 그런데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광저우 오페라하우스를 보기 위해 광저우를 방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을 찾기 힘들다면,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고 찾는 사람 역시 극히 소수일거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동대문을 찾는 건 서울이라는 대도시 안에 동대문이라는 거대한 패션 상권이 있고, 그곳에서 24시간 내내 생생한 서울 시민의 삶을 볼 수 있기에 방문하는 것이다.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작품이 미국에 딱 한 군데 존재한다. 하버드대학교 카펜터센터라는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그 건물이 누구에 의해 설계됐는지 모른다. 더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카펜터센터를 보기 위해 하버드를 방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하버드에 방문하는 이유는 하버드대학교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세계 최고 대학이라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카펜터센터를 하버드대의 랜드마크로 여기지 않는다. 하버드대의 랜드마크는 하버드 교정 안에 있는 설립자 존 하버드의 동상이다. 동상을 만지면 자손들이 하버드에 입학할 것이라는 속설 때문에, 존 하버드 동상의 왼발 끝 모서리는 반질반질하게 닳아있다고 한다. 동대문에도 이런 스토리를 간직한 곳이 있었다. 동대문운동장은 우리에겐 한일전 경기, 고교야구 등 각종 스포츠 경기와 행사가 열렸던 근현대의 추억이 서린 장소다. 하지만 동대문운동장은 철거됐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건립을 위해서. 

그러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 기억과 장소성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동대문운동장에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사자원 또한 숨어 있었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한 자리에서 2만 점이 넘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들이 쏟아져나왔고, 조선 전기부터 후기, 일제시기 등 서울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흔적이 발견됐으니까. 다행히 박물관 설립과 보존을 통해 이 곳의 흔적을 남기려 하나, 이런 역사성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라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에 가려진 형국이다. 

처음에 이상하게 보이는 건물도 물론 자주 보면 눈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서울시 신청사는 예외일것 같다. 그 건물은 아무리 쳐다보고 있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또한 자주 마주하다보면 지금과 같은 이질감은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동대문 패션타운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담보하는 진정한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진정한 랜드마크는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장소성과 역사성에 대한 기억을 가졌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덧글

  • beomyi 2014/02/27 04:50 # 답글

    랜드마크의 적절성을 떠나서 동대문이라는 곳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저런 건물을 지었겠지요. 황량한 벌판에 접근성 떨어지게 지은 것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동대문에 쇼핑하러 갔다가 저런 건물까지도 덤으로 구경한다면, 이 아니 좋지 않겠습니까? 꼭 비꼬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동대문의 '패션'과 '스타일', 그리고 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이루어낼 콜라보레이션은 생각해보자면, 또 무척 어울리기도 합니다. 비정형 건물이 갖는 새로움과 신선함. 오히려 제 생각에는 사람들이 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꼭 집어서 보러 가면 갔지, 동대문 운동장을 구경하러 가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경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물론 작성자분의 생각도 일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만...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 9회역전만루홈런 2014/02/27 14:38 #

    물론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겠으나...정치인이 자신의 임기 내에 어떤 치적을 위해서 뚜렷하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보여주기식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특히 전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런 쪽에서 말이 많기로 유명하죠. 그가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한강에 세운 '세빛둥둥섬'이 지금 어떤 상태를 하고 있는지를 아신다면, 동대문플라자에 대해서도 낙관적으로 보시기만은 힘들겁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문제는 단순히 크게 짓고 말고를 떠나서, 저 정도의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면서 내부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고 주변 경관과의 어울림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단 기간동안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을 끌 수는 있겠으나 실질적으로 동대문의 패션과 어떻게 콜라보레이션을 이룰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추후에 그저 거대한 흉물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 천하귀남 2014/02/27 22:51 # 답글

    싸고 다양한 물건 구경삼아 동대문에 가끔 가는데
    동대문 저 인근지역의 공실률이나 유동인구 특성등을 보면 참 암담하긴 합니다. 5000억짜리 건물을 지어서 만원아래 티셔스 파는 가게도 드문드문 들어갈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참고로 자전거로 서울 시청에서 청계천을 따라 동대문 - 뚝섬 - 반포(새빛 둥둥섬) - 여의도 - 양화대교 등을 쭈욱 지나다 보면 오세훈이 뿌린 돈이 참으로 경이적입니다. ^^;
  • 9회역전만루홈런 2014/02/28 01:06 #

    안녕하세요. 먼저 콘텐츠가 구체적으로 존재하고 그것에 맞춰 건물을 지어야지, 건물부터 짓고 그 다음에 콘텐츠를 채울 생각을 하면 실패한 건축 프로젝트가 되기 쉽다는 점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걱정되는 부분이 크네요. 어쨌든 이왕 지었으니, 늦게라도 정말 콘텐츠를 제대로 채우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오세훈 프로젝트는 서울 전역을 쉴 틈 없는 공사 현장으로 몰고 갔죠. 이런 거대 프로젝트로 인해 당시 서울시 재정이 크게 악화돼 지방채 잔액은 2년간 2배 이상 증가했고 부채도 크게 늘어나 서울시 재정 악화 주범으로 통했으니까요. 5세 훈이에게 건축이란 그저 보기 좋은 오브제에 불과했다고 봅니다.
  • potato. 2014/03/03 20:29 # 삭제 답글

    공감가는 부분이 맞네요. 랜드마크라는 건 그 규모나 위용보다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 건데... 동대문이란 곳은 생각보다 여러 콘텍스트를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먼저 한양의 사대문 중 한곳이기도 하고, 산업화시기 면가공으로 지금은 패션의 메카가 되었고, 또 얼마 전까지는 유서깊은 야구장도 있었고요. 디자인플라자를 보면 과연 이런 것들을 고려한 프로젝트였을까 의문이 듭니다. 자하 하디드라는 외국 건축가가 이런 맥락을 유념하고 디자인을 한 건지도 모르겠고요. 여의도나 강남 같은 곳이라면 모를까, 저곳은 사대문 안의 종로잖아요. 서울이 사막 위에 새로 짓는 두바이 같은 도시도 아니고. 근처에 궁궐이 즐비한 600년이나 된 고도시 한가운데에 저런 덩어리를 짓는 나라가 과연 있기나 한지...
  • 9회역전만루홈런 2014/03/04 00:25 #

    자하 하디드가 그런 맥락을 알고 디자인했을거란 생각은 솔직히 안 듭니다. 알았으면 최소한 스타트랙에서나 나오는 우주선을 서울 한가운데 착륙시켜놓지는 않았을테니까요. 그리고 알았다 한들,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해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을거에요. 참고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곡면은 한옥의 처마에서 영감을 받아 그것을 형상화시켜놓은거라는 설명이 있던데, 과연 대다수의 일반인들이 그런 설명을 듣기 전에 저 모습을 보고 한옥 처마를 연상할 수 있을까요? 국대축구팀 유니폼 디자인이 한복을 모티브로 디자인됐다는 소리만큼이나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피맛골의 무자비한 철거가 제일 안타깝습니다. 지금은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어버렸죠. 역사성과 장소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개발만큼 시간에 가해지는 폭력이 또 있을까요.
  • potato. 2014/03/07 01:26 # 삭제

    헛, 피맛골에 대해 아련함을 가진 분을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ㅎㅎ 저도 누구보다 피맛골의 재개발에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습니다ㅠ
  • 모방범 2014/03/06 15:15 # 삭제 답글

    두어달 전에 근처 갈 일이 있어서 함 가봤는데 뭔가 기괴하더군요. 100년 앞을 본 디자인일까요. 아직까지는 주변 경관이나 동대문이라는 장소의 개성과는 부합해 보이지 않은데, 100년 후;; 주변에 그에 맞는 건물들이 생기면 어울릴 듯요
  • 9회역전만루홈런 2014/03/06 19:57 #

    서울시 청사도 100년 뒤를 내다보고 지은 결과물일까요...ㅠㅠ 혹시 200년?
댓글 입력 영역